위안부, 아니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은 정말 자발적 창녀인가?
위안부 스토리를 쓰려면 굉장히 긴데
일본군은 왜 위안부를 운영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예를 들면 일본군이 만주를 침략하고 시베리아 연해주 쪽으로도 가는데
가는 곳마다 현지 여성을 겁탈하고 심지어 러시아 여성들도 강간했다.
그리고 군내에 성병이 만연했고 이는 곧 군전투력 저하로 이어져 1개 사단 자체가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만 그런게 아니어서 그리하여 일본군은 위안부를 운용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성매매업자를 통해서 종군 위안부를 데려다 쓰다가 나중에는 현지 여성들을 강제로 인신매매, 납치, 취업사기, 등등 방법으로 조달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상당히 불거지고 일본군은 이를 묵인했다는데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 태국, 필리핀, 대만, 조선, 인도네시아, 베트남, 네덜란드, 심지어 동맹국인 독일 여성까지도 강제로 위안부로 데려다 썼다.
위안소는 일본군인들으로부터 요금을 받고 이용하게 햇다는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위안부가 돈을 받고 군인들에게 용역을 제공했으니 이는 바로 "창녀"라고 말하면 안된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네덜란드 언론인 몰레만스의 위안부 실태 보도를 한번 보자.
그녀는 일본군이 아주 "조직적으로" 동맹국인 독일 여성들을 성폭력, 즉 집단강간했다고 밝힌바 있다.
몰레만스에 따르면 전쟁 당시인 1942년 3월 초부터 네덜란드령인 인도네시아의 자바섬 동부 블로라 지역에서 일본군 48부대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독일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몰레만스는 "30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한 건물로 옮겨졌고, 이후 이 건물은 군대의 위안소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특히 배우자 및 자녀 앞에서 독일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이 이뤄졌고, 하루 19차례 성폭행당한 여성도 있었다고 몰레만스는 설명했다.
몰레만스는 "1942년 3∼4월에 독일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이 쉬지 않고 이뤄졌다"고 말했다.독일 여성들은 동맹국인 독일 정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을 우려한 장교의 개입으로 사실상의 위안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몰레만스는 인도네시아에 독일 여성들이 있었던 이유에 대해 "독일 여성들은 교사였거나 농장주와 석유 기술자의 아내들이었다"고 덧붙였다.이런 사실이 독일에 알려지지 않아 온 데 대해선 "독일에서는 아무도 일본의 이런 전쟁범죄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이는 네덜란드전쟁기록원에 있는 증거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몰레만스는 네덜란드전쟁기록원에 있는 증거 자료가 2026년까지 비공개로 돼 있는데, 변호사를 통해 관련 서류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몰레만스는 네덜란드전쟁기록원(NIOD)과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등에서 찾은 자료를 근거로 이같이 말했다.
그녀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한 데 이어 네덜란드 여성 얀 루프 오헤른이 피해 사실을 밝히자, 네덜란드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전 식민지에서의 전쟁범죄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면서 1994년에 공개된 보고서의 내용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몰레만스는 "나의 결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만 7만명이 일본군의 성폭력에 희생됐다는 것"이라며 "소년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성폭행 피해를 본 여성들이 네덜란드 본토 출신, 인도네시아 및 파퓨아뉴기니 현지 출신,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한국인, 대만인"이라고 전했다.
몰레만스는 최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 논란에 대한 질문에 "나는 독일인뿐만 아니라 35개국에서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면서 "적어도 50만 명의 희생자들이 있었는데, 한국인과 중국인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독일을 포함해 더 많은 국가의 여성들에 대해 전쟁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연구해온 몰레만스는 올해 초 관련 사실을 다룬 책 '일생의 전쟁'(A LIFETIME OF WAR)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