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독립은 개인적으로 뜻깊은 일이지만, 과거의 아픈 경험을 떠올리면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부대에서는 외부의 적이 아닌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충정 훈련이 반복되었습니다. 연병장에는 탄약을 실은 트럭이 장기간 대기했고, 운전병은 낮에 오침을 취하며 대기조가 된 중대원들은 전투복 차림으로 취침해야 할 만큼 긴박한 비상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제로 출동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완전 군장을 한 우리 앞에서 중대장은 포고문 성격의 글을 낭독했는데, 그 골자는 '이번 출동이 해병대 독립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차량에 탑승해 부대 밖으로 향하며 느꼈던 그 의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과연 그 명령이 해병대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조직의 염원을 미끼로 병사들의 충성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 것이었는지 말입니다.
다행히 차량이 부대 정문을 나서기 전 출동이 취소되어 중대로 복귀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무겁기만 합니다.
민주주의의 꽃이어야 할 투표 역시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해병대 독립을 위해서 특정 후보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고, 보안사에서 투표 용지를 검열한다는 흉흉한 소문 속에 비밀 투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조직 내부의 부패 또한 심각했습니다.
보직을 얻기 위해 거액의 뒷돈이 오간다는 이야기를 중대장에게 직접 들을 정도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말단 병사들의 몫이었습니다. 대대에서 돼지를 잡으면 좋은 부위는 간부들이 차례로 챙겨가고, 병사들의 식판에는 형편없는 급식만 남겨지던 모습은 당시 조직 전반에 뿌리 깊었던 구조적 부조리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지금의 군은 과거보다 관리·감독 체계가 강화되었고, 인권과 투명성에 대한 기준도 비약적으로 높아졌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 한편이 여전히 답답한 이유는, 지금의 해병대 독립이 진정으로 조직의 전문성과 장병 개인이 존엄을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병대 독립은 그 자체로 완성된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과오를 뼈저리게 성찰하고, 다시는 병사들이 정치적 목적에 동원되거나 부당한 희생을 강요받지 않겠다는 굳건한 약속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해병대 독립은 온전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