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의 소형차 엑셀이 미국 매장에 처음 등장한 지 40년이 지났다. 낮은 가격으로 초기 구매자들을 끌어들였지만, 품질·신뢰성 문제로 심야 코미디언들의 놀림감이 됐다. 레노는 엑셀을 "밀어야 시동이 걸리고 내리막길에서만 굴러가는 3피트짜리 자동차"라며 올림픽 루지에 빗대기도 했다.
요즘은 현대차를 놀리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경쟁사들은 더 그렇다. 지난 1월 북미 올해의 유틸리티차량으로 선정된 팰리세이드를 포함한 확장된 라인업을 앞세워, 현대차는 8월 미국 판매 신기록을 또다시 세웠다. 글로벌 기준으로는 이제 폭스바겐과 부동의 1위 토요타에 이어 세계 3위 완성차 업체로, 2019년 7위에서 뛰어올랐다. 시장조사업체 오토퍼시픽의 폴 와티 산업분석 담당 이사는 "그들의 상승세는 그야말로 유성 같다"고 평했다.
큰 그림

지난해 현대차·제네시스 브랜드는 전 세계에서 424만 대를 판매해 2% 증가했다(기아까지 합치면 그룹 전체 724만 대). 하지만 지난주 호세 무뇨스 CEO는 훨씬 더 큰 야심을 분명히 드러냈다. 서울에서 열린 현대차 연례 투자자의 날 행사에서, 북미 사업까지 총괄하는 멕시코 출신의 무뇨스는 2030년까지 현대차·제네시스만으로 연간 생산능력을 127만 대 늘리겠다는 새 계획을 공개했다. 이는 전통적인 조립공장 4~5개에 해당하는 규모로, 일부는 기존 공장의 증산으로 채워진다.
이번 확장은 한국 본토는 물론, 무뇨스 체제하에서 강조되는 현지화 전략에 따라 핵심 시장에 맞춘 제품을 해당 시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방식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생산능력이 30만 대 이상 늘어 연간 약 140만 대 규모가 된다. 다만 이번 계획의 핵심은 북미다. 조지아주 엘라벨의 메타플랜트가 한계치까지 가동되며 끝없는 월간 판매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는 만큼, 미국 내 생산능력은 앞으로 4년간 약 50만 대 늘어날 예정이다.
물량 공세가 다가온다

이런 대규모 증산에는 새 고객을 사로잡을 적절한 차종이 필요한데,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와티는 지적한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2030년까지 완전 신차·업데이트 모델 100종이라는, 업계에서 거의 유례없는 물량 공세를 예고했다. 이 중 58종이 북미 시장에 투입되며, 일부 순수전기차를 포함한 나머지는 유럽·중남미·아시아 시장 전용이다. 이미 일부는 공개된 바 있다. 제네시스 GV90과 이 럭셔리 브랜드 최초의 고성능 모델 마그마가 그 예다.
특히 순수전기 GV90의 네올룬 버전은 가격과 이미지 측면에서 제네시스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전망이다. 약 2억 1,600만원(15만 달러)대로 예상되는 이 화려한 4인승 SUV는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서브 브랜드의 최고급 모델을 정조준한다. 2026년 뉴욕오토쇼에서 공개된 터프한 SUV 볼더의 양산 버전도 공식적으로 '검토 중'인데, 회사 고위 관계자 두 명은 사실상 승인이 떨어진 상태라고 귀띔했다. 무뇨스는 당시 중형 픽업을 포함한 추가 파생모델도 뒤따를 것이라 밝혔고, 제네시스와 기아에서도 관련 파생모델이 나올 예정이다.
로봇과 로보캡

이번 CEO의 발표는 지난해 현대차가 밝힌 260억 달러(약 37조 4,400억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에 더 많은 살을 붙인 것이다. 이 투자는 신차·업데이트 라인업 확대와 생산 증설을 아우르며, 루이지애나주에 신규 제철소도 세울 예정이다. 또한 확장된 메타플랜트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 자회사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도 생산할 계획으로, 2028년 양산이 목표다. 현대차는 자율주행과 로보택시에 활용될 소프트웨어·AI 역량도 확대할 계획이다. 웨이모와 체결한 계약이 여기에 힘을 보탤 전망으로, 이 로보택시 선두주자는 올해 말 순수전기 아이오닉 5의 첫 무인주행 버전을 인도받는다. 현대차 역시 올해 하반기 자체 서비스 '모셔널'을 출시할 예정이다. 무뇨스는 서울 발표에서 "로보택시는 큰 도움이 될 새로운 판매 채널"이라고 말했다.
벼랑 끝에서 돌아오다

현대차의 현재 성공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생들이 연구해볼 법한 극적인 반전이다. 초기의(비록 짧았지만) 엑셀 성공 이후 회사가 얼마나 재앙에 가까웠는지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719만원(4,995달러)이라는 파격가로 시장의 모든 경쟁 모델을 무너뜨리며 판매가 급상승했고, 이는 현대차가 퀘벡주 브로몽에 공장을 세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품질·신뢰성 문제가 판매에 타격을 주면서 이 공장은 1994년 문을 닫았고, 현대차는 북미 시장 철수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떻게 반전을 이뤄냈을까. 무뇨스는 돌이켜보며 "현대차의 성공은 끊임없는 고객 중심 경영과, 구매자를 만족시키고 기대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는 끊임없이 회복력과 유연성을 개선하려 노력하며,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가격으로 적절한 제품을 내놓을 시장 기회를 항상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람을 구합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분명 품질과 신뢰성을 중시하지만, 보증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이탈하는 고객을 붙잡는 역할에 그쳤다. 오토포캐스트솔루션스의 샘 피오라니 수석 애널리스트는 그 이후 몇 가지 추가 조치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판매 부진한 세단·쿠페에서 인기 SUV·CUV로의 전환, 디자인 혁신, 승차감·성능의 대대적인 개선이 그것이다. 가장 영향력 있었던 조치 중 하나는 2006년 아우디의 전설적인 디자인 총괄이었던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가 영입한 것이다.
이후 그는 현대차그룹 전체 디자인 총괄이자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2023년 은퇴 전 그는 필자에게 "브랜드를 신선하게 유지하면서도 강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와티는 "현대차 디자인은 다르다. 다들 비슷비슷한 시장에서 사람들이 이를 알아보고, 그게 현대차 시장점유율에도 드러난다"고 평했다. 이후 또 다른 유럽 출신 인사 뤽 동케르볼케가 바통을 이어받아 현재 글로벌 최고디자인책임자를 맡고 있다. 한편 알버트 비어만은 2015년 합류해 현대차의 엔지니어링 과제를 해결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6년간 그가 몸담으며 현대차 제품의 승차감·핸들링·성능은 크게 개선됐다. 그가 없었다면 현대 N이나 신형 제네시스 마그마도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숫자로 본 현대차
거의 모든 지표에서 현대차는 자동차 업계, 아니 비즈니스 전반에서도 보기 드문 반전과 성장을 이뤄냈다. 2025년 세계 3위 판매 완성차 업체였을 뿐 아니라,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139억 달러(약 20조 160억원)로 폭스바겐그룹의 104억 달러(약 14조 9,760억원)를 앞서며 2위를 차지했다. 올해도 판매 증가세에 힘입어 좋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 브랜드는 화요일 아침 발표에서 8월 판매 신기록을 또 세웠다고 밝혔다. 랜디 파커 현대차 북미법인 사장 겸 CEO는 "8월은 현대차 포트폴리오의 저력을 보여준 달이었다. 하이브리드 수요가 계속 강세를 보이며 전동화 차량이 전체 판매의 34%를 차지했고, 하이브리드는 역대 최고 비중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제네시스 브랜드도 이번 달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빈약한 제품 포트폴리오로 출발이 더뎠던 제네시스는 럭셔리 시장 최하위권에서 빠르게 벗어나 포드 링컨을 넘어섰고, 2025년 상반기 미국 판매 8만 2,331대로 GM의 플래그십 브랜드 캐딜락(8만 6,104대)에 근접했다. 와티는 "제네시스가 캐딜락 판매를 앞지르기 시작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GM은 분기별로만 미국 판매를 발표하는 만큼, 진짜 시험대는 9월 말이 될 전망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갈 수 있을까

현대차는 오늘날의 업계 리더들마저 끌어내리길 바라고 있고, 실제로 상당히 선전 중이다. 콕스오토모티브의 에린 키팅 수석 애널리스트는 폭스바겐이 직면한 여러 난제를 감안하면 "현대차가 2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폭스바겐 CEO는 이미 회사 구조조정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최대 5개 공장 폐쇄를 담은 제안은 감독이사회에서 부결된 상태다. 토요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키팅은 "현대차가 토요타 자리를 빼앗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토요타가 툰드라 픽업 등에 쓰인 i-포스 맥스 엔진 관련 품질 문제 등으로 곤욕을 치른 건 사실이지만, "토요타는 여전히 강한 지속력을 지녔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편 현대차는 지난 수십 년간 다른 왕년의 강자 브랜드들이 저질렀던 실수를 반드시 피해야 한다. 20세기 초반 세계 자동차 산업을 지배했던 포드가 대표적이고, GM 역시 80년간 부동의 최강자였다가 오늘날 세계 완성차 업체 순위 6위까지 밀려나며 유럽·인도 같은 핵심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한 상태다. 피오라니는 "현대차 경영진은 계속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장 수요 변화, 불확실한 경제 상황, 그리고 미국이라는 핵심 시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정책 행보까지, 발목을 잡을 만한 위험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무뇨스와 그의 팀은 로보틱스 같은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면서 자원을 지나치게 분산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피오라니는 덧붙이며 "이 업계는 극도로 경쟁이 치열해서, 자칫 한눈파는 사이 선두 자리를 내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출처 : https://www.autoblog.com/cars/hyundai-takes-aim-at-vw-and-toyota-with-a-100-model-product-bli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