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편의점만 10년째 지키고 있는 29살 편붕이입니다.
지금은 5년 넘게 복용하던 약을 끊어내며(단약 중), 매일 새벽 졸음과 사투하며 제 인생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문득 제가 근무 초기에 겪었던, 인간의 지성이 인성과는 정반대일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인텔리 진상’ 한 분이 떠올라 글을 적어봅니다.
1. 던힐 오렌지와 20cm의 거리
새벽 3시경, 40대 남성이 들어와 던힐 오렌지 한 갑을 주문하더군요. 계산을 마치자마자 그는 제 눈앞에서 담배 비닐을 슥 벗기더니 저에게 내밉니다.
“이것 좀 버려줘요.”
그의 바로 뒤, 불과 20cm 거리에는 손님용 쓰레기통이 있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친절하게 말씀드렸죠.
“손님, 바로 뒤쪽에 쓰레기통 있습니다. 거기 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폭발하는 ‘가짜 권위’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버럭 화를 내더군요.
“아니, 이거 하나 못 버려줘? 서비스가 왜 이래?”
당황스러웠지만, 그때는 사회초년생이었기에 감정을 누르고 사과하며 비닐을 받아 버렸습니다. 제 잘못이 아님을 알았지만, 새벽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짤릴 준비 해, 나 사장이랑 친해”
진짜 가관은 그다음이었습니다. 비닐을 버려준 저를 노려보며 그는 문을 나가기 전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더군요.
“내가 여기 사장이랑 잘 아는 사이거든? 너 오늘 한 행동 다 말할 거야. 짤릴 준비나 하고 있어.”
편의점 알바생의 생계를 흔들 수 있다는 오만함. 그게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반전: 그의 정체는 ‘의사’였습니다.
나중에 사장님께 들었습니다. 그분, 이 근처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라고 하더군요.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고귀한 직업을 가진 분이, 새벽 편의점에서 담배 비닐 한 장 자기 손으로 못 버려서 20대 청년의 일자리를 위협했습니다. 공부는 많이 하셨을지 모르나, 인간으로서의 예의는 담배 비닐보다 가볍더군요.
마침표
의사 선생님, 사장님께 말씀은 잘 하셨나요? 다행히 저희 사장님은 인격이 훌륭하신 분이라 저는 여전히 카운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당신이 휘두른 그 유치한 권위가 누군가에겐 삶의 현장이자 치열한 생존의 터전이라는 걸, 당신의 그 좋은 머리로 한 번쯤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도 이 바닥에서 배운 인간의 민낯들을 기록하며, 제가 정한 삶의 궤도를 묵묵히 걸어갑니다.
작가 장원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