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식어버린 간장게장과 10살의 직감
엄마가 떠나던 날, 식탁 위에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해준 간장게장이 놓여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저녁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엄마가 들어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적막한 집 안,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만이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엄마 어디 좀 왔다. 내일 들어갈 거다.”
생전 처음 듣는 말투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10살 소년이었던 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아이는 아직 모른다. 오늘 밤이 영영 끝나지 않을 지옥의 시작임을.)
나는 곧장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서 안 들어온다고. 아빠는 달려왔고, 그렇게 나의 '아빠와 단둘이 사는 삶'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옥은 혼자 오지 않았다. 엄마가 떠난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예고 없이 찾아온 통증이었다. 13살이 되기 전부터 복통이 시작되었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식은땀을 흘려도 병원에서는 장염이나 배탈이라는 말뿐이었다. 아빠조차 내 고통을 믿어주지 않았다.
“꾀병 부리지 마라.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다 안다.”
공부하기 싫어 거짓말하는 아이로 취급받으며 나는 혼자 고통을 삼켰다. 13살이 되어서야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마친 후, 내 병명이 결정되었다. ‘크론병’. 그리고 내 배에는 평생 잊지 못할 흉터와 함께 ‘장루’라는 대변 주머니가 생겼다.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장소가 아니었다. 배에서 나는 가스 소리와 냄새, 그리고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변 때문에 나는 늘 긴장 상태였다. 결국 내가 선택한 도피처는 피시방이었다.
피시방 구석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성역이었다. 학교에서 조퇴하고 피시방으로 향할 때마다 자괴감이 나를 짓눌렀지만, 그곳만이 내가 낙오자가 아니라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역설적이게도 나를 너무나 사랑하셨다. 장루를 닦아주고 관리해 주는 아빠의 손길에서
나는 생존의 의지를 느꼈다. 하지만 그 사랑의 방식은 하우스라는 도박장 안에서 기괴하게 뒤섞여 가고 있었다.
나는 10대의 끝자락에서 공부 대신 생존을 먼저 배웠다. 수능 9등급. 그것은 성적표가 아니라 내가 지옥에서 버텨온 훈장이었다.
"형님들, 10살의 제가 마주했던 그 간장게장의 짠맛이 아직도 입안에 맴돕니다. 지금의 삶 보다 무거웠던 건 제 배에 달린 대변 주머니의 무게였습니다. 이제는 그 지옥 같은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글로 털어내 보려 합니다. 제가 이 지옥을 끝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형님들의 따뜻한 응원 한마디가 절실합니다.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내 10대는 밤이였다
난 공부가 아니라 생존을 배웠다
작가 장원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