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배의 이중잣대, 타인의 가짜뉴스는 ‘테러’, 자신의 왜곡은 ‘실수’인가
"정보의 불투명성 악용한 '여론 호도형 악마의 편집'... 유권자의 판단력 흐리는 통계의 늪"

초여름의 길목에 들어선 광주 무등산 자락의 바람이 오늘따라 서늘하다. 20여 년 가까이 취재 현장을 지키며 펜을 들어온 기자의 가슴 한구석에는 여전히 ‘광주’와 ‘전남’이라는 단어가 주는 뭉클함과 엄중함이 서려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렸던 이 땅의 정신은, 그 어떤 순간에도 정직과 정의라는 가치를 놓지 말라는 무언의 죽비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 통합특별시장 경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은 참으로 민망하다. ‘검수완박’의 기수를 자처하며 그토록 선명한 목소리를 내왔던 민형배 의원이, 정작 안방 경선에서는 ‘정보의 불투명성’이라는 가림막 뒤에서 수치(數値)를 주무르는 구태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발단은 예비경선 직후 떠돈 출처 불명의 ‘득표율 지라시’였다. 민 의원은 즉각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명백한 경선 테러’라 규정하며 수사기관 고발이라는 강수를 뒀다. 가짜뉴스로부터 민심을 지키겠다는 그 결연한 의지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민형배 캠프에서 제작했다는 한 장의 카드뉴스가 발목을 잡았다.
신정훈 후보 측이 폭로한 그 카드뉴스는 가히 여론 호도형 ‘악마의 편집’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카드뉴스 전면에 박힌 ‘33.4%’라는 압도적 수치는 통합특별시 경선의 전체 성적표가 아니었다. 지난 1월 조사된 ‘광주 지역 한정’ 지지율일 뿐이다. 당시 조사에서 민 의원은 전남 거주자들로부터는 14.5%를 얻는 데 그쳐 김영록 지사(23.3%)에게 크게 뒤처졌고, 본인 지역구인 광산구(37.1%)의 편중된 지지에 기댄 결과였다.
그럼에도 민 의원 측은 이 ‘광주 지역 데이터’를 가져와 “예비경선 통과 감사합니다”라는 문구와 결합해 살포했다.
경선 득표율은 당규상 철저히 비공개다. 후보 측 참관인조차 자기 후보의 수치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민 의원 측은 이 ‘정보의 공백’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과거의 유리한 수치를 현재의 성적인 양 둔갑시킨 것은 지능적인 ‘여론 호도’ 다.
특히 하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출처를 적었으니 법적으론 무죄라는 강변은 비겁하다. 20년 넘게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독자의 눈은 중앙의 큰 글씨를 보지 구석의 주석을 훑지 않는다.
이는 당규상 경선 득표율이 철저히 비공개라는 점을 악용한 명백한 기만이다. 시점이 한참 지난 과거의 유리한 지표를 마치 따끈따끈한 ‘경선 성적표’인 양 둔갑시킨 솜씨가 정녕 놀랍다.
실제로 현장 언론인들조차 “민 후보가 33%대로 1위를 했느냐”고 술렁였을 정도니, 정보의 접근이 제한된 일반 유권자들이 느꼈을 혼선과 배신감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것이다.
민 의원 측은 하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출처를 적었으니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는 비겁한 변명이다. 거대한 막대그래프와 “압도적 지지”라는 선동적 문구에 노출된 유권자가 구석의 미세한 주석을 훑어볼 리 만무하다는 것을 그들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자칭 타칭 '검수완박'의 민주투사를 자처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거대 악과 싸운다며 내질렀던 그 결기는 왜 본인의 경선판 앞에서는 이토록 비루하게 작아지는가. 그가 걸어온 길목마다 누군가는 상처를 입었고, 그가 뿌린 말들의 잔치 뒤편에는 많은 의혹들이 꽈리를 틀고 있다. 스스로가 외쳐온 정의가 정녕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날카로운 잣대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타인의 가짜뉴스는 ‘테러’라며 법의 몽둥이를 들고, 자신의 왜곡된 홍보는 ‘실무진의 실수’라며 꼬리를 자르는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진정성을 읽어야 하는가.
통합특별시는 호남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엄중한 자리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힘을 합쳐야 할 이 거대한 실험의 장이, 고작 ‘누가 1위냐’를 가리기 위한 숫자의 장난질로 오염되는 것을 보는 시·도민의 마음은 저 무등산의 그림자처럼 어둡다.
민형배 의원은 ‘경선 테러’를 외치기 전에, 스스로가 배포한 왜곡된 수치가 시·도민의 판단력을 흐린 ‘통계 테러’는 아니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고, 그 마음은 정직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뿌리를 내린다.
무등산은 말이 없지만, 굽어보는 눈은 매섭다. 기만(欺瞞)의 외피를 쓴 ‘압도적 지지’가 아니라, 민형배 그대는 정녕 진실 앞에 당당한 ‘압도적 정직’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가.
전남 광주가 지켜온 자존심은 숫자로 장난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정직한 전남광주 특별시장을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