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576억에 멈춰 선 '호남의 꿈', 잿밥에 눈먼 정치가 부른 참사

시스템 마비 위기에도 뒷짐 진 정부와 투쟁력 잃은 호남 정치권...
청년에게 빚 떠넘기는 '무책임한 통합' ...

지난달 1일, 광주·전남 통합 특별법이 통과됐을 때만 해도 지역민들의 가슴 속엔 40년 분절의 역사를 끊고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설 거대 경제권 탄생에 대한 기대가 일렁였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들려온 소식은 참담하다. 통합특별시 출범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인 576억 원이 정부 추가경정예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부의 논리는 차갑고 빈약하다. 중동 전쟁 여파를 대응하는 추경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1,000억 원을 빌려줄 테니 지방채를 발행해 '빚'으로 시작하라는 권고는 사실상 국가의 책무를 지방에 떠넘기는 처사다. 행정 시스템이 통합되지 않아 주민등록 등본 한 장 떼지 못할 혼란이 예견된 상황에서, 정부는 "나중에 줄 20조 원에서 알아서 깎아 쓰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

60 평생을 광주와 전남을 오가며 살아온 필자에게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라는 희망은 이제 부질없는 잔상이 되어버렸다. 지역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정치인들이 필요할 때만 호남을 외치다 정작 마지막(Last)은 타당에서 활동하고, 이제는 한전 사장 자리까지 꿰차고 앉아 있는 현실을 보라.

그 '철새 정치인'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은 이제 의미조차 없다. 결국 그들을 선택한 것도 지역민들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만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가난과 소멸의 위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비극의 화살을 정부와 여당에만 돌리기엔 우리 내부의 '정치적 무능'이 너무나 뼈아프다. 20년을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의 눈에 비친 호남 정치권의 모습은 여전히 '염불보다 잿밥'에 가깝다. 청년들이 빚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청년들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며 호기롭게 통합을 외쳤지만, 정작 그 토대가 될 초기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동안 지역 의원들의 존재감은 희미했다. 정부가 제안한 '지방채 발행'은 결국 미래 세대인 청년들이 짊어져야 할 빚이다.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매몰 비용을 지방의 빚으로 떠넘기는 정부의 행태에 왜 더 강력하게 저항하지 못했는가.

거대 민주당 현재는 야당의 텃밭이라는 지위는 역설적으로 '잡은 고기' 취급을 받는 토사구팽의 명분이 되었고, 지역 정치인들은 그 틀 안에서 안주하며 투쟁력을 상실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다음 공천'이라는 잿밥에 골몰하느라, 정작 시·도민들이 겪을 행정 마비와 지역 소멸의 위기는 뒷전으로 밀려난 꼴이다.

당장 80여 일 뒤면 '전남광주통합특별시'라는 간판이 걸린다. 안내 표지판 1만 6,000여 개를 갈 돈도, 2,500여 개의 조례를 정비할 의회 공간도 없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시·도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행정 인프라의 붕괴다. 40년간 따로 놀던 전산망이 합쳐지지 않으면 지방세 부과부터 소유권 이전까지 모든 행정이 멈춰 선다.

호남인들에게 정치는 늘 '눈물'이었다. 소외와 차별의 역사를 끊기 위해 기꺼이 희망을 투표했지만, 돌아온 것은 늘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희망 고문뿐이다. 이번 예산 삭감 사태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호남의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정치인들이 과연 자신을 희생하며 지역민의 눈물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의지가 있는지 묻는 마지막 시험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공동 대응이 절실하다. 호남의 의원들은 이제라도 잿밥을 내려놓고 시·도민의 절박한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7월 1일, 통합특별시의 첫날이 '혼란의 시작'이 될지 '도약의 원년'이 될지는 오로지 정치의 손에 달려 있다. 더 이상 호남의 희망을 예산 논리에 팔아넘기지 마라. 지역민들이 흘리는 눈물은 언젠가 매서운 심판의 파도가 되어 돌아올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