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쓰레기’라 불린 시도민의 민심, 승자의 품격은 어디에 ...
정치는 ‘청소’가 아니라 ‘건축’이다…
일부 지지자들의 비아냥 속에 씻겨 내려간 호남의 자존심...

정치사회부 기자로 20년, 선거 현장의 매캐한 먼지를 마시며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다. 투표함이 열리고 당락이 결정되는 순간, 비로소 그 정치인이 품은 진짜 ‘그릇’의 크기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승자의 예우는 패자에 대한 자비가 아니다. 그것은 패자를 지지했던 수많은 시·도민의 마음을 보듬는 엄중한 의식이다.
최근 전남·광주 통합특별시장 민주당 경선에서 민형배 후보가 승리했다. 현직 지지사를 꺾은 이변이었고, 변화를 바라는 민심의 분출이었다. 하지만 승전보가 채 식기도 전에 들려오는 일부 지지 세력의 거친 언사들은 승리의 기쁨보다 서늘한 우려를 자아낸다. “SNS에 게제된 쓰레기들이 다 씻겨 내려갔다”는 식의 독설은, 수많은 네거티브를 지켜본 기자의 눈에도 참담하게 읽힌다.
민 후보 측 일부 지지자들이 말하는 ‘쓰레기’는 대체 누구인가. 경선 상대였던 김영록 후보인가, 아니면 그를 지지하며 호남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던 시·도민들인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과거의 행적을 비판한다는 명목으로 경쟁자를 ‘씻겨 내려갈 오물’로 규정하는 발상은 오만함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김영록 후보 역시 엄연한 이 지역의 정치인이며, 그를 지지했던 이들 또한 민 후보의 지지자들과 다름없는 소중한 시·도민이다. 상대를 쓰레기로 부르는 순간, 그를 지지했던 수만 명의 마음 또한 쓰레기더미 속에 파묻히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호남 정치가 민주주의의 보루로 불린 것은 단순히 압도적인 지지율 때문이 아니라, 상처받은 소수까지 안고 가려 했던 ‘품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민 후보는 이제 막 민주당의 ‘후보’가 되었을 뿐이다. 아직 정식 취임은커녕 본선이라는 더 높은 관문이 남아 있다. 이번 경선 결과는 시·도민이 부여한 ‘당선증’이 아니라, 본선에서 제대로 평가받아보라는 ‘수험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벌써 승취(勝醉)에 취해 상대를 조롱하고 배제하는 광경은, 이들이 꿈꾸는 ‘시민주권정부’의 실체가 무엇인지 의심케 한다. 자신과 뜻이 다르면 ‘청소 대상’이 되는 정치는 개혁이 아니라 독선이다. 지지자들의 저열한 비아냥을 묵인하는 행위는 후보 본인의 리더십에 대한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기자의 수첩에는 여전히 ‘정치의 품격’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적혀 있다. 승자가 패자를 향해 침을 뱉는 곳에서 새로운 희망이 피어날 리 만무하다. 지금 민 후보 측에 필요한 것은 비아냥 섞인 축배가 아니라, 경쟁자를 지지했던 마음들까지 녹여낼 ‘포용의 언어’일것이다.
거울 앞에 선 민 후보와 일부 지지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씻어냈다고 자부하는 그 ‘쓰레기’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오물이 되고, 경선에서 이기면 정의가 되는 이분법적 사고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킬 뿐이다.
진정한 승리는 상대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품어 안아 더 큰 하나를 만드는 데 있다. 입으로 뱉은 말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승자의 오만이 패자의 상처를 헤집는 지금, 민주주의의 품격은 쓰레기와 함께 씻겨 내려간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쓰레기들이 씻겨 내려갔다”고 환호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버린 그 ‘오물’ 속에 호남이 그토록 소중히 지켜온 ‘인간에 대한 예의’와 ‘민주주의의 염치’도 함께 버려진 것은 아닌가. 정녕 씻겨 내려가야 할 것은 반대파의 존재가 아니라, 승리에 취해 타인의 존엄을 짓밟는 당신들의 오만함이다.
시·도민들은 민 후보의 당선 가능성보다, 그 지지자들의 수준에서 이 지역의 미래를 먼저 읽고 있다. 20년 차 기자의 눈에 비친 호남 정치의 오늘이 유독 쓸쓸한 이유다.
“정치적 승리는 짧고, 인격의 향기는 길다. 비아냥거림 속에 숨은 승취(勝醉)는 결국 민심이라는 차가운 물에 깨어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