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그 당시의 현대차는 차를 잘 만드는 회사라기보다는 장사를 참 잘하는 회사라 생각한다. 초창기 미쓰비시와의 기술제휴를 통한 생산 위주에서 점차 판매량을 늘려가며 투자 확대, 자체 기술력 확보, 점유율 증가, 수출로 이어지는 일련의 성장 과정은 렉서스의 북미 시장 안착 방식과도 다르지 않다.

   68년도에 도요타는 저가형 코롤라 등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 판매량을 늘리며 점점 인지도를 높여가는 가운데 싸구려 이미지를 털어내고 마침내 89년 렉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었다.

   현대 역시 포니 엑셀로 본격적인 미국 수출 시작 후 오랫동안 싸구려 이미지는 역시나 벗어날 수 없었지만 어찌 됐든 그 결과 북미시장에 제네시스 브랜드를 런칭하기에 이른다.

   그간 국내 소비자들을 상대로 내수 수출 부품 차별, 옵션질 등을 자행한 점 역시 부인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도 이제는 장사 잘하는 회사에서 차 잘 만드는 회사라 칭하기에 무리 없어 보인다.

 

** 이와 별개로 현대차의 또 다른 강점은 경쟁사 대비 소비자 needs 파악과 그에 따른 발 빠른 상품성 개선 등 신속한 대응이 주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크게 네 가지로 나눠 살펴보았다.

 


   1. 시류를 읽는 디자인 변화

   당시 너무 앞선 디자인의 에스페로가 출시 초기 시장에서 고전하다 마침내 점차 익숙해지려 할 때, 현대는 각그랜저의 후속 뉴그랜저를 내놓게 된다.

뉴그랜저4.jpg
현대의 플래그십 세단 2세대 뉴그랜저

   미쓰비시가 파워트레인, 현대가 디자인을 전담하며 공동 개발하게 되는데 당시 현대의 최종 디자인을 점검한 미쓰비시 측에서 '더 이상 손 볼 곳이 없다'라며 인정받아 그대로 출시됐다고 한다.
   에스페로와 같은 호불호 극명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1세대 각그랜저와 같이 위엄을 더해주는 직선 위주의 디자인에 반해 당시 플래그십 세단으로서는 이례적인 감각적 곡선을 대폭 적용한 젊은 디자인으로 변화의 흐름에 자연스레 환승했다고나 할까.

   사실 그보다는 국내 최고급 차량이라는 이미지만으로도 이미 큰 거부감 없이 어필할 수 있었으므로 디자인 같은 부분은 도를 넘어선 헛발질만 아니라면 충성도 높은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부차적 요소일 뿐 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덕분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소 과감한 디자인 변화도 시도할 수 있었으리라.

   또한, 94년 대우 아카디아 3200cc 출시로 국내 최대 배기량을 기록하자 라디에이터 그릴, 휠 디자인을 바꾸고 엔진까지 이미 개발을 완료해둔 뉴그랜저 3500cc를 곧바로 출시하며 판매량뿐 아니라 이미지 리더로서도 계속 선두자리를 지키게 된다.

  아카디아.jpg

혼다 레전드의 국내판 대우 아카디아

 

   당시 국내 대형차 시장은 미쓰비시 데보네어의 국내판인 그랜저, 마쓰다 루체의 포텐샤, 혼다 레전드의 아카디아 등 일본 차 3파전으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분노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탈 수 없는 형편에 더 분노..).

 

   2. 신규 시장 진출, 이후 치열한 선두 경쟁

   동아 시절부터 쌍용에 이르기까지 국내 4WD 시장은 코란도, 코란도 '훼미리'가 거의 독점하던 80~90년대. 현대는 미쓰비시 파제로를 베이스로 현대정공을 통해 갤로퍼를 개발, 투입하자마자 단숨에 판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갤로퍼.jpg

 91년 출시한 현대정공 갤로퍼

 

   이에 쌍용은 부랴부랴 캥거루 범퍼, 전면부 크롬, 휘발유 2600cc 추가 등 뒤늦은 상품성 개선으로 대응했지만 판매량에서 계속 뒤처지며 한때 회사의 존폐 위기까지 겪기도.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신 모델 무쏘, 뉴코란도, 렉스턴을 잇따라 출시하며 3연타석 홈런으로 기사회생에 성공한다.

   이 쌍용차 트리오는 출시하자마자 시장의 반응은 찬반으로 논란이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파격에 이은 공격적 디자인의 무쏘, 이전 세대의 정통 밀리터리룩은 찾아볼 수 없는 뉴코란도, 당시만 해도 SUV라기엔 생소한 외관의 렉스턴까지.. 나중에 별도로 다뤄볼 예정.

   특히, 렉스턴의 등장으로 갤로퍼, 테라칸과 함께 국내 최고출력 타이틀을 놓고 바야흐로 당대의 혈전을 벌이게 된다.

   출시 당시 포터에 얹었던 2500cc 85마력 엔진에 무쏘가 벤츠 2900cc 95마력을 들고나오자 터보를 장착한 후계자 테라칸으로 다시 103마력, 렉스턴 2900cc 인터쿨러 TDi의 120마력에는 카니발에 얹었던 2900cc 150마력, 렉스턴 2700cc EDi 160마력에 대응해서는 기를 쓰며 165마력으로 반격, 이후 렉스턴이 170마력까지 끌어올리자 이번에는 174마력까지 쥐어짜냈지만 렉스턴2의 XVT 191마력에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만다.

   이후 현대차가 눈물을 머금고 테라칸을 단종시키며 회심의 역작 V6 3000cc 베라크루즈를 앞세워 귀환하지만 칼을 뽑기도 전에 상대는 힘에 겨워 제풀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미 쌍용차는 그간 누적된 실적 부진으로 인해 신규 엔진 개발에 뒤늦어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였던 것이다.

   기존의 주력이던 2700cc 5기통 디젤엔진마저 환경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퇴출, 4기통 145마력 2000cc 디젤 XVT 하나로 버티다 이후 2200cc 디젤을 겨우 추가하지만 이미 엔진의 출력과 가짓수에서 더 이상 상대가 되지 못하면서 치열했던 전쟁은 결국 현대차의 승리로 끝이 난다.

   적벽대전만큼이나 흥미진진했지만 2006년식 렉스턴2 노블레스와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씁쓸한 결말이었다.

 

 

   쓰기 힘들어 세 번째부터는 다음 편에..

 

 

 

 ** 보배드림 눈팅 25년차에 이제 와서 첫 글을 올리는 이유.

   밀레니엄 즈음, 초창기 이곳의 분위기는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간 뼈도 못추리는 그야말로 야생 그 자체였다. 비단 여기만의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당시 PC 통신 이후 인터넷 저변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생겨난 각종 카페 문화의 성장속도를 정서적으로 따라잡지 못하던 내겐 관심있던 자동차 분야의 대표 사이트가 보배드림이었지만 가장 살벌한 곳이기도 했다.

   누군가 얕고 어설픈 지식이라도 뽐낼라치면 어느새 득달같이 달려들어 집단 린치로 난도질을 해댄다. 마치 그것이 정당한 응징이라도 되는 양 정의감으로 군중심리에 합세하며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어떨 땐 칼을 빼든 서로에게도 달려든다. 각자 휘두르던 칼의 크기, 칼을 만든 대장간의 규모와 기술력, 또는 주로 쓰는 검범을 문제 삼으며..

   지금 와서 돌아보면 문희준 같은 사람도 그 시절 대표적 희생양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련 조롱 짤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그저 편하고 자유롭게 취미활동을 누리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회원가입도 없이 신차 정보나 후기 위주로 들여다보기만 하던 세월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약자들의 피해사례나 부조리, 나날이 급증하는 진상 짓거리에 직접 나서서 대응, 해결하는 수많은 아재들의 실행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배의 화력이란 이름으로 점차 사회적 반향으로까지 이어지는 최근의 분위기는 분명 오래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념이나 젠더 문제 등 여러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는 예민할 때도, 때로는 뻔한 낚시질에 어이없이 낚일때도 많지만 정많은 아재들의 선한 영향력은 부인할수 없는 뚜렷한 변화였다.

   최근의 정치적 상황 또한 나로 하여금 뭐라도 하게 만들었다. 갖가지 청원이 올라오면 동참하기 위해서라도 로그인을 해야만 했기에 어느새 여느 사이트처럼 뒤늦게나마 회원가입을 하게 된다.


   그러고도 사실, 20년 차 현직 트럭커로서 하루 평균 15~17시간씩 운행하느라 이런 글 쓸 시간은 고사하고 잠잘 시간도 부족한 나날이었다. 그러다 무리했는지 안과 질환이 생겨 현재 망막박리 수술한 지 일주일째. 앞으로도 한달 넘게 회복해야 하는 강제휴가 기간이라 이렇게 한 쪽 눈으로나마 평소 해보고 싶었던 옛날 차 이야기를 개인적 기억과 느낌을 바탕으로 보배드림에 처음 올려본다.

 

   정확한 명칭이나 세부 수치, 연도 등에서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온전히 기억에만 의존하여 끄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인적 견해임을 밝히며 마무리한다.